회색

느리고 거의 볼 수 없으며, 때로는 외적으로 정지된 듯 하나 지속적으로 중단하지 않는 운동이 앞과 뒤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 바실리 칸딘스키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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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따뜻한 색)과 파란색(차가운 색)을 섞으면, 결국 두 색의 대립은 무마되고 완전한 정지 상태가 된다. 여기에서 초록색이 생긴다.

검정 때문에 흐려진 하양에서도 이와 동일한 결과가 나타난다. 하양은 지속성을 잃고 회색이 생긴다. 그리고 이 회색의 정신적 가치는 초록색과 매우 가깝다.

초록색 속에는 노랑과 파랑이 다시 소생할 수 있는, 일시적으로 마비된 힘이 잠재해 있다. 초록색은 회색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어떤 생명적인 가능성을 가졌다. 이것은 회색이 스스로 움직이는 힘을 전혀 가지고 있는 않은 색(하양, 검정)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색은 생명적 가능성을 결핍하고 있다.

흰색은 죽은 것이 아닌, 가능성으로 차 있는 침묵이다. 그리고 가능성이 없는 무, 해가 진 후의 죽은 무, 미래와 희망이 없는 영원한 침묵과 같은 것이 바로 검은색의 내적인 울림이다.

회색은 절망적인 부동성을 갖는다. 회색이 짙으면 짙을수록 절망감은 더해 가고 질식시키는 힘이 나타난다. 회색이 밝아지면 일종의 공기가 유통되고 숨쉴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나며, 그 색은 어느 정도 숨겨진 희망의 요소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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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칸딘스키가 정의한 초록색과 회색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요약한 것이다. 회색은 무(無)에서 파생되는 힘을 가졌다.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회색은 잔잔히 진동한다. 주변과 차분하게 동화된다. 정지된 듯 하나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힘. 나는 이것을 회색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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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는 그 생물의 특징을 가장 잘 말해주는 기관에서 쉽게 찾아낼 수 있다. 꿀벌의 혀와 입과 위에 꿀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새겨져 있듯이, 우리 인간의 눈, 귀, 골수, 몸속의 신경조직에는 우리가 지상의 사물에서 흡수하는 것을 특별한, 지구에서는 유일한 질의 에너지로 바꿔야 한다는 사실이 새겨져 있다.

-모리스 메테를링크 『꿀벌의 생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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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테를링크는 『파랑새』에서 파랑을 행복의 색이자 책 주제의 상징으로 설정했다. 파랑은 안으로 파고드는 힘을 가졌다. 그래서일까, 그는 희망은 다른 곳이 아닌 자기 자신 안에 있다는 내용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나는 회색처럼 작게 숨 쉬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회색의 잔잔한 운동처럼, 내가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용기를 갖기를, 밝고 어두운 모든 영역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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