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사진

내 프로필 사진은 흰색이다. 미적지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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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와 달리 프로필 사진을 아주 잘 사용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이름은 N이다. N과 나는 더 이상 연락하는 사이가 아니다. 어느 날 문득 N이 떠올랐다.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 SNS에서 N을 찾아 프로필 사진을 눌렀다. N의 프로필 사진은 내가 N에게 선물로 그려준 그림이다. n년 동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N은 프로필 사진에 스티커까지 붙이며 예쁘게 쓰고 있다. 정말 변함없이 예쁜 사람이다.

N과 나는 문래에서 처음 만났다. 그 날은 살짝 더웠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낮고 작은 판자집 사이를 N과 딱붙어 다녔다. 당시 문래는 핫플이 돼서 신상 가게들이 생겨났고, 원래 터를 잡았던 예술인과 제조업체들은 문래의 변화에 얼떨떨 하던 시기였다. 나는 N에게 잘해주려다보니 마음도, 행동도 우왕좌왕했다. 나는 문래에 처음 온 N을 ㅇㅇ분식에 데려갔다. 나름 비장의 카드였다. 나의 맛부심을 N에게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예나 지금이나)웨이팅을 한 후 들어간 ㅇㅇ분식에서 근본 메뉴를 시켰다. 나는 기대반 설렘반, ㅇㅇ분식에 대한 N의 반응을 기대했다. 그런데 첫 입을 먹은 후, 우리의 젓가락질은 느려졌고, 대화는 줄어들었으며, 침묵이 흐를 때 쯤 우리는 음식을 남긴 채 밖으로 나왔다. ㅇㅇ분식은 여전히 맛있다. 그런데 그날은 왜 그랬나 모르겠다.

그 후로 N을 데리고 전시를 봤던가 산책을 했던가 기억이 안난다.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우리는 마지막으로 카페에 갔다. N이 커피를 마실 때, 나는 낮술을 마셨다.

그 후로 N과 더 이상의 만남은 없었다. 약속을 잡아도 코로나 때문에 무산 됐다. 그렇게 어긋나는 시간이 길어져 지금이 됐다.

그런 N이 아직도 내가 준 그림을 자신의 프로필 사진으로 쓰는 게 마냥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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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생 때 캐리커쳐 아르바이트를 했다. 미대생이라면 한 번 쯤은 거쳐가는 코스여서 나름 재밌었지만, 나에겐 남의 얼굴을 귀엽게 그리는 재능은 없었다. 용돈벌이에 혈안이던 나는 연습이랍시고 가족들의 얼굴을 그렸다. 풋내기의 첫 모델은 아빠였다. 어색한 선으로 아빠의 얼굴을 그렸다. 그다지 닮지도 않았다. 아빠는 나의 첫 캐리커쳐를(그리고 아빠의 첫 캐리커쳐를) 자신의 프로필 사진으로 했다. 그 후 꽤 만족스러운 그림이 나와서 아빠에게 프로필 사진을 바꾸라고 요구했지만, 아빠는 꿋꿋이 그 첫 번째 그림을 프로필 사진으로 했다. 무려 11년 동안.

최근에 아빠는 프로필 사진을 내렸다.

그 사진은 할 일을 다 했다. 그림을 그리는 딸은 아빠의 프로필 사진을 볼 때마다 묘한 희열을 느꼈다. 못난 그림이여도 사랑받는 그림은 생명력이 길다. 그러면 작가의 숨에도 활기가 찬다. 아빠의 은은한 지지와 포용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작가이기 전에, 그림을 좋아하는 나 전에, 온전한 내가 있다. 아빠의 가만한 나날 덕분이다. 고맙다.

아빠의 프로필 사진은 내 것과 같이 미적지근한 분위기를 풍긴다. 지금도 좋지만, 아빠가 마음에 드는 새로운 사진을 만들어 줘야겠다 생각했다.

별것도 아닌 프로필 사진 때문에 행복하다. 나도 이젠 프로필 사진을 올릴거다. 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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