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만 서로를 아는 사이

눈으로만 서로를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관계보다 더 미묘하고 더 까다로운 것은 없다. 날마다, 아니 매시간마다 서로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쳐다보기도 하지만 인습이나 자신의 기우 때문에 인사나 말을 건네지 않고 짐짓 냉담한 낯설음을 가장한채 뻣뻣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 사이엔 불안감과 극도로 자극된 호기심이 있다. 그들 사이엔 인식과 교환에 대한 욕구가 불만족스럽고 부자연스럽게 억압되어 생겨나는 히스테리, 즉 일종의 긴장된 존중의 감정이 있다. 왜 그런가 하면 인간은 다른 인간을 평가할 수 없을 때에만 그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까닭이며, 동경이란 것은 불충분한 인식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토마스 만, 『베니스에서의 죽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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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에서의 죽음』은 토마스 만 작가가 쓴 소설이자,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이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은 순수한 예술을 향한 예술가의 열망을 보여준다. 등장인물 타치오는 완벽하고 순수한 예술을 상징한다. 주인공 아셴바흐는 타치오를 보며 순수한 아름다움을 열망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은 순수한 아름다움 앞에서 얼마나 하찮고 초라해지는지 아셴바흐의 변화를 통해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타치오와 아셴바흐는 시선, 행동, 거리두기와 같은 비언어적 표현으로만 소통한다. 토마스 만은 대화가 오가지 않는 둘의 관계를 글로 표현한다. 두 사람 사이를 지칭할 수 있는 명사도 없다. ‘눈으로만 서로를 아는 사이’는 감각과 본능이 진동하는 관계다. 그들은 부정확한 신호를 주고받는다. 둘만 알 수 있는 감각 안에서 믿음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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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초등학교 6학년, 안경을 쓰고 싶었던 귀여운 마음 덕분에 내 눈은 변했다. 나는 칠판이 안 보인다는 뻔한 거짓말로 안경을 손에 넣었다.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쓴 후로 시력은 곤두박질쳤다. 사실은 평소에도 안경을 쓰고 다녀야 할 정도로 시력이 나쁘다. 안경이 멋있어 보였던 초6때의 마음과는 달리 지금 나는 안경이 번거로워서 착용하지 않는다.

나는 흐리고 뿌연 세상에 만족한다. 필요한 정보를 파악할 정도만 보이면 된다. 너무 많은게 보이는 세상에서 산다는 건 나에겐 정말로 피곤한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은 아니다. 사물이 흐릿하게 보여도 사람이나 대상을 구분할 수 있다. 신기하게도 사람은 각자 풍기는 분위기와 느낌이 다르고,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 파동도 달라진다.

흐릿한 눈으로 봐도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그건 본능일 수도, 흔히 말하는 끌림 일 수도 있다. 자신에게 특별한 사람이 군중 속에 있어도 한 눈에 찾을 수 있듯이, 우리는 어쩌면 제 3의 눈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시력이 나빠지고 알게 된 건 보이는 게 다가 아니며, 우리는 더 감각적으로 다른 대상과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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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눈으로만 서로를 아는 사이’가 있다. 서로 대화를 하지 않고 시선을 마주하는 동안 오해가 쌓였다. 나와 그 사람 사이의 오해도 있었지만, 내가 이 관계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했다. 오해를 풀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대화가 없는 사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멀어지는 상황이 와도 이별을 말할 이유가 없었다. 서로가 마음이 맞는 한 우린 계속 연결됐다. – 의외로 간단했다. – 그래서 우린 끝없는 질문과 넘겨짚기를 이어갔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과 미묘한 관계를 직시하면서 나는 성장할 수 있었다. 그 경험의 영향으로 나는 그림을 그린다.

우리는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을까?

나는 종이를 앞에 두고 목탄을 든 채 질문한다. 진정한 소통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진심이 닿을 수 있을까? 아셴바흐의 순수한 예술을 향한 열망처럼, 순수한 소통을 향한 열망이 내게 덕지덕지 묻어있다. 그 열망을 종이에 옮기면서 새로운 만남을 이어간다.

목탄으로 작업을 하면 이곳저곳에 목탄의 흔적이 생긴다. 목탄은 공기에 섞여 멀리 날아가고, 심지어 내 온몸에 얼룩덜룩 가루가 낀다. 종이와 목탄이 만나 종이 결 틈새에 검은 가루가 채워지고, 목탄은 부서지며 흩날린다. 목탄으로 그린 그림은 형태가 뚜렷하지 않다. 내 예상과 빗나가며 끝없는 조율이 필요하다. 이 작업 과정은 나에게 강력하면서도 연약한 느낌을 준다. 마치 서로의 시선이 엉켰다가 고개를 돌려 여운을 남기는 관계처럼. 결말이 헛되더라도 온 힘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처럼. 오늘도 난 답을 찾지 못하고 목탄 가루 범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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