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만 기다린다

저번에 무슨 뽕이 차올랐는지 도서관에서 장편소설 3권을 빌려놓고선 계속 방치해 두었다. 또 그 당시에 이벤트가 많아서 책을 읽을 여유가 없다며 핑계를 댔었다. 결국 긴 시간이 지나서야 책을 손에 들었다. 책이 너무 재밌어서 읽는데 4일 걸렸다. 며칠이면 읽을 책을 미루고 미뤄서 연체를 해버렸다. 9월 3일이면 책을 빌릴 수 있다. 딱 기다려라.

사서 읽는 책과 빌려 읽는 책의 느낌은 차원이 다르다.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고 빌려 읽는 그 쾌감은 게임보다 짜릿한 도파민을 준다. 헌터처럼 책을 찾아내고, 내가 찾는 책이 도서관에 있다면 그 도서관을 찬양하게 된다. 책은 절판이 되기도 하고, 나온지 오래된 책은 구하기가 힘들다. 이렇게 책을 읽고 싶지만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도서관은 보물창고다. 각 도서관마다 귀한 책을 가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도서관은 작가가 글을 쓰고, 출판사가 책을 내고, 누군가가 책을 도서관에 비치하고, 그걸 또 다른 사람이 읽으며 서로 연결되는 엄청난 공간이다.

예전에는 누가 이 책을 빌렸는지 알 수 있도록 책 뒷 편에 작은 기록지가 있었다. 요즘은 그게 없어서 조금 아쉽다. 내가 주로 읽는 주제의 책들을 펼쳐보면 항상 같은 스타일의 밑줄이 쳐져있다. 누군가가 나보다 먼저 그 책들을 읽었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 버릇을 가진 사람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책이 더러워서 짜증이 났었다. 그런데 읽는 책이 10권이상 겹치다보니 이제는 그 사람의 낙서가 있기를 기대하고 있을 정도다. 그 사람은 어쩌다가 나보다 이 책을 먼저 알게 됐을까? 그 사람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나는 그 사람에게 내적 친밀감이 쌓였다. 그 사람은 나와 다른 관점을 가졌다. 예를 들면, ‘철수는 사과를 먹었다.’라는 문장이 있다면, 나는 보통 ‘사과’에 주목한다. 그런데 그 사람은 ‘먹었다’에 동그라미를 친다. 이런걸 발견하는 소소한 재미도 있다.

지금 어떤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마음이 흐리멍텅하다. 내가 나에게 확신이 없는 상태이다. 그러다보니 자료조사나 지식에 매달려 영감님이 내게 찾아와 달라고 빌고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어떤 책을 읽자는 마음이 생겼다. 이번에 빌리고 싶은 책은 한번 빌려서 읽었었는데도 내용이 잘 기억 안나서 다시 읽으려는 책이다. 처음 그 책을 읽을 때는 책의 저자가 궁금해서 읽게 됐다. 글쓴이는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또 그 생각이 지금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싶었다. 어떤 책을 읽으면 그 책 내용과 글쓴이의 열정이 몸에 전달돼 동화되는 느낌이 든다. 당시에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책을 읽는 ‘나’가 좋았었다. 내가 느끼기에 잘난 ‘나’를 붙잡으면 아는척도 할 수 있고 우월감도 들면서 인정욕구를 충족시켜준다.

그래서 결국 내가 이번에 저 책을 다시 읽으려는 목적이 도취감을 느끼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이자 결핍이다. 내 안에 없는것을 책으로 채울 순 있다. 그런데 내가 이상화 하는 모습이 있다는건 불만족에서 온다. 그 불만족이 어디를 향해있는지를 알아차려야한다. 그 화살이 나에게 향해있다면, 지식을 채우며 겉핥는게 아닌 내 삶에서 실천해야한다. 내가 바뀌어야하는 것이다.

그냥 지금의 나로 만족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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